이스라엘신학 세미나- 메시아닉유대인, 이스라엘내 최소 3만 이상 존재


이스라엘신학 세미나

메시아닉유대인, 이스라엘내 최소 3만 이상 존재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믿는 이들이 나오게 된다. 이들을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이라 부른다.

1947년 11월 29일, 국제연합에서 유대인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따로 설립할 것을 결정하는 결의안 181호가 통과된다. 이 결의안에 대해 당시 85만명의 유대인은 찬성했지만 이스라엘 주위 10억의 중동국가 내 아랍인들은 반대했다.

2천년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메시아닉유대인 문제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정치적, 종교적 이슈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기 시작됐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수상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100만명이 못되는 유대인과 10억의 중동국가는 준전시상태로 돌입한다.

1967년 6월 흔히 ‘6일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북쪽과 남쪽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6월 5일(월) 시작한 전쟁이 10일(토) 안식일에 끝난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이후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수복한 이스라엘의 본국귀향은 더욱 당당한 모습을 띄게된다. 2천년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수복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수복이란 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믿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언에 주목하게 됐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세차례 예수님의 예루살렘 예언을 언급한다. 누가복음 13:34-35, 19:41-44, 23:28-31 이 바로 그 부분이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예언뿐 아니라 바울의 이방인 선교와 예레미야의 70이레 예언과 다니엘의 예언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해 보고자하는 신앙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1989년 첫 통계가 나올 때까지 그 숫자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아닉유대인 문제는 이스라엘의 정치상황과 세대주의신학과 함께 기독교와 연결돼 있어 단순한 정의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기독교 입장에서 그들을 유대인의 한 부류라고 무관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내 메시아닉유대인의 숫자는 300개 교회에 최소 3만~6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아닉 유대인을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메시아닉유대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 온 권혁승 교수(전 서울신학대 부총장)와 이스라엘에 있는 One For Israel 대학의 Dr. Erez Soref 총장이 지난 10월 30일(화) 뉴욕 칼리지포인트에 있는 프라미스교회(담임 허연행 목사)에서 이스라엘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프라미스교회가 주관한 이 세미나에서 권 교수는 ‘이스라엘에 주목해야 할 성서적 역사적 근거’에 대해, Erez 총장은 ‘이스라엘 신학과 메시아닉운동의 현재동향’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에레츠 총장이 언급한 메시아닉유대인들의 현재동향에 관한 부분을 요약했다.

“전세계적으로 1,350만명의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 중 700만명 정도의 유대인이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합니다. 유대인 역사이래 과반수 이상이 이스라엘에 살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One For Israel 대학에서는 지난 2~3년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담은 비디오클립을 인터넷 등을 통해 배포했습니다. 조회수가 8천500만을 넘었습니다. 그 비디오클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제작된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로 예배를 드리고 히브리어로 찬양을 드리는 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랍비는 지난 1900년동안 예수를 믿게 된 숫자보다 지난 19년동안 예수님께로 돌아 온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복음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One For Israel 대학은 유일하게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대학입니다. 전세계에서 히브리어로 강의하는 유일한 대학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복음 사역을 하는 상당수가 One For Israel 대학 출신입니다.

언론에서는 중동문제에 대해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으로보도를 합니다. 하지만 한 도시에서 사역하던 아랍과 이스라엘 사역자가 저희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이해하는 만남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유투브에서 ‘One For Israel’을 치면 이러한 간증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제2차대전 이전, 1939년 통계 당시에는 유럽에 25만명의 메시아닉 유대인이 거주했습니다. 제1차 대전부터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까지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했습니다. 당시 영국성공회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성공회는 예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영국은 이스라엘에서 통치를 끝내고 본국으로 복귀할 계획을 세울 당시 메시아닉 유대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이스라엘에 남아 있게되면 전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영국으로 떠날 것을 제안홥니다. 대다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당시 이스라엘을 떠나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벤구리온 수상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1967년 6일전쟁이 있고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손에 넣게 됩니다. 2천년만에 예루살렘 성전을 수복하게 된 것입니다. 1980년 경까지 당시 그 땅에 거주하는 메시아닉 숫자는 20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조사된 1989년 당시 이스라엘내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교회가 30여개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10년 이후인 1999년 조사때에는 30개였던 교회가 81개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사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메시아닉유대인의 교인 분포는 여전히 이스라엘 밖에서 출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전체숫자는 전국적으로 5천여명 정도였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러시아로부터 역이민을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1989년~1999년 당시에는 박해에 대한 소식도 많이 들려온 시기입니다. 현재 이스라엘내 메시아닉유대인들의 숫자는 300여개 교회에 최소 3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최강석 기자)